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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 『바닷가에서』는 망명자와 이주민, 그리고 주변화된 존재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공간적 소외를 심층적으로 고찰한다. 본 논문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적대적 환대’ 개념,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타자성’ 이론을 분석의 틀로 삼는다. 이를 통해 소설에 드러나는 공간성과 주체 형성의 과정을 텍스트 내 인물의 서사와 공간의 묘사를 중심으로 이론적 개념을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또한 본고는 기억과 상처, 침묵과 언어, 환대와 배제의 경계에 위치한 인물들이 어떻게 윤리적 공동체 가능성을모색하는지를 ‘사이, 틈, 차이’라는 세 가지 공간적 개념을 통합적으로 적용하고자 한다. 작품의 주인공 오마르와 라티프는 잔지바르 출신으로, 과거 가문 간의 갈등으로 인한 상처와 오해를 품은 채 영국으로 망명해 살아간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민 서사를 넘어, 식민주의의 잔재와 가족사에 얽힌 왜곡된 기억 속에서 형성된 정체성의 혼란을 반영한다. 특히 이 소설 속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기억과 감정, 권력과 배제가 교차하는 ‘정치적 장소’로 기능한다. ‘사이’는 데리다의 ‘적의적 환대’ 개념을 통해 조명할 수 있다. 환대는 타자를 수용하는 듯하지만, 사실상 조건과 기준을 내세워 선별적으로 배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오마르가 가짜 신분으로 망명을 시도하고, 라티프가 사회적으로 성공했음에도 내면적으로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이러한 환대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환대와 배제 사이의 간극은 주체와 타자 사이의 불안정한 긴장을 상징한다. ‘틈’은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개념과 연결된다. 아브젝트는 주체에서 유래했지만 제거되어야 하는 존재의 흔적으로, 오마르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모국어를 부정하거나 익숙했던 일상적 사물과 거리를 두는 행위는 그러한 정체성 분열의 표지다. 그러나 오마르와 라티프는 서로의 상처를 직면하면서, 점차 서로에 대한, 현재와 과거에 대한 틈은 좁혀지며 공동체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윤리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레비나스의 ‘타자성’은 타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며, 이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요구한다. 두 인물은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려는 윤리적 태도를 보이며, 침묵과 배제의 역사를 공유한 공간은 윤리적 실천의 장소가 된다. 환대의 모순은 ‘사이’라는 조건부 공간을 만들고, 이 공간에서 주체는 자신의 일부를 ‘아브젝시옹’함으로써 내부적 ‘틈’을 겪으며, 이 틈을 통해 타자의 무한성과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본 고는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바닷가에서』가 탈식민주의 이후 이민자들이 겪는 정체성, 기억, 언어, 공간의 문제를 다층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바탕으로 본 논문은 이 작품이 어떻게 공간성과 정체성, 윤리적 관계의 문제를 서사적으로 교차시키는지를분석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완전한 화해보다는 상처와 기억이 공존하는 경계의 공간 속에서 주체와 타자가 함께 머무르는 모습을 통해 공간을 매개로 한 정체성의 재구성을 문학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상처와 타자성을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정체성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윤리적 관계를 모색한다. 이러한 과정은 소설이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정체성 재구성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공간에 대한 기억의 서사적 윤리에 관한 대화를 제시함으로써 공동체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제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제목
- ‘사이, 틈, 차이’로 읽는 경계의 윤리: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바닷가에서』에 나타난 타자성과 공간의 정치성
- 제목 (타언어)
- The Ethics of the Borderline through Gap, Crack, and Disparity: Otherness and the Politics of Space in Abdulrazak Gurnah’s By the Sea
- 저자
- 박시영
- 발행일
- 2025-06
- 저널명
- 비교문학
- 호
- 96
- 페이지
- 399 ~ 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