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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시에 나타난 ‘추상’의 의미The Meaning of ‘Abstraction’ in Kim Jong-sam's Poem

Other Titles
The Meaning of ‘Abstraction’ in Kim Jong-sam's Poem
Authors
한혜린
Issue Date
Dec-2020
Publisher
한국문학연구소
Citation
한국문학연구, no.64, pp.251 - 293
Journal Title
한국문학연구
Number
64
Start Page
251
End Page
293
URI
https://yscholarhub.yonsei.ac.kr/handle/2021.sw.yonsei/5367
DOI
10.20881/skl.2020..64.008
ISSN
1229-4373
Abstract
회화에 있어서 ‘추상’의 문제는 표현의 기원에 상응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객관적 시각과 사실적 재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회화의 표현은 추상성을 수반한다. 김종삼의 추상 기획은 내면의 표상화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김종삼이 시에서 추구한 추상의 본질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다. 김종삼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상이 지워진 추상의 모호함을 통해 후경으로서의 내용을 지운다. 이는 현실적 대상의 반영이라는 타율적 요소를 지워나감으로써 추상성이 지닌 자율적 의지를 향하는 것이다. 외부적 모방의 단계에서 벗어나려는 시인의 열망은 한국과 서구와의 접점에서 새로운 추상의 언어를 재구축한다. 전후의 한국 추상은 앵포르멜이 유입된 뜨거운 추상의 시기로, 격렬한 정서와 풍부한 내면성의 양상을 보인다. 실험적 언어에 대한 시인의 열망은 비정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한 조형언어와 만나 자신의 새로운 추상성을 기획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김종삼이 시 「앙포르멜」을 발표했던 시점인 1966년은 한국의 화가들이 맹목적인 서구화단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자각과 더불어, 격정적인 추상에 대해 절제된 태도로서 미술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진행되던 시기이다. 당시 앵포르멜은 내적인 표현욕구와 외적인 계기가 일치하면서 수용의 환경을 조성하였고, 6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단순한 양식적 유사성이 아니라 서구와 한국의 접점 사이에서 추상이 자주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한국화단의 작가들에게 서구 앵포르멜의 수용과 경험은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을 찾기 위한 변형과 확장의 과정이었듯이, 김종삼의 앵포르멜에 대한 관심과 경험은 새로운 언어로 자신이 지향하는 추상성을 찾으려 했던 시적 도정임을 보여준다.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추상의 추구는 충동적 정서의 발현이라는 작업태도가 아닌, 신중하게 동양적 요소를 발견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행된다. 김종삼이 새로운 언어로 기획한 추상의 세계는 가시적인 존재의 심연에서 떠오르는 비가시적 층위의 세계이다. 김종삼은 시에서 여백의 운용을 통해 비가시적 층위의 깊이와 심오함을 담는다. 여백은 의미를 품고 있는 바탕으로서 ‘의미의 백서(白書)’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동적 차원의 공백이 아니라 더 많은 세계를 암시하는 능동적 공간이 된다. 형상 대신 여백을 운용하는 것은 존재와 마주치는 매순간 점멸하는 ‘나’의 의미를 형상으로 고정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의 모든 가능성을 수용하는 동시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향한 여백의 운용은 존재의 잔상을 비워야 한다는 시인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공백의 영역은 세계를 향한 김종삼의 관조적 태도의 메타포이다. 시인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가 아닌, 평정의 상태에서 시작(詩作)에 임한다. 이는 대상과 구분되는 주관을 제거한 상태에서 거리를 두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자세이다. 김종삼에게 시작은 외부로 향했던 자신을 이완의 시간 속에서 재정비해가는 일이었다. 여백의 장치와 시작에 임하는 관조적 태도는 김종삼 시에 나타난 ‘추상’이 서양미술사의 고유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자주적 발현으로서의 추상 시도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는 외관을 귀납적 동일성으로 환원하는 것에서 추상을 창도했던,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적 구분을 전제하고 있는 서구의 추상과 변별된다. 관조적 시선의 주체가 만든 빈 공간은 의미를 품고 있는 세계인 동시에 의미의 구속으로부터 자율성을 지닌다. 이로써 하나의 시는 외부세계를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실재로서 ‘시적(詩的) 사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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